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 영화 (문단 편집) == [[일본 영화/역사|역사]]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일본 영화/역사)] 일본 영화의 역사는 길다. [[1896년]]에 영화가 들어오자마자 얼른 자국 영화를 만들었을 정도다. 이 시절 만들어진 영화들은 필름이 사라져 사진이나 기록 같은 자료만 남아있지만 1900년대에 나온 무성 흑백영화 자료가 여럿 남아있다. 그리고 이미 20세기 초반에 촬영 스튜디오를 소유한 메이저 영화사 [[닛카쓰]]가 설립됐을 정도로 영화 시장이 성장하게 된다. 당시 미국에서도 촬영 스튜디오를 소유한 영화사는 극소수였다. 2차 대전 이후로도 성장이 계속되어 [[1958년]]엔 관객 11억으로 정점을 찍기도 했다. 시장의 축소와는 별개로 규모에 걸맞게 매년 엄청난 편수의 영화들을 찍어내고 있다. 일본 영화라 하면, 애니메이션 영화, TV 애니메이션 극장판 영화, 만화 원작 영화, TV 드라마 극장판 영화, 특촬물 영화 등이 우선적으로 떠올려지지만 극영화에서도 만만찮은 공력을 보유하고 있다. 196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등장한 소위 [[뉴웨이브]] 감독들이 일본 [[사무라이]], [[찬바라]] 영화나 문예 영화에 열광했던 것이 좋은 예다. [[아카데미 시상식]]과 [[칸 영화제]]를 비롯한 유수의 영화제에서도 적지 않은 수상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미 1950년대부터 아카데미 등 여러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해왔으며,[* 일본은 1950~1960년대에 아카데미는 물론이고 세계 3대 영화제라는 베니스, 칸, 베를린 영화제를 모두 석권했다.] 근래에도, 2009년에 《오쿠리비토(굿 '바이)》가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 애니메이션이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상(일반)을 수상한 바 있다. 2018년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 제71회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며, 2021년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가 칸 영화제 각본상,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골든 글로브 비영어영화상을 수상하였다. 배우 부분에 있어서도 상당히 앞서 상을 받았다. 1958년에는 우메키 미요시(1929~2007)가 영화 《사요나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일본 최초는 물론이고 아시아 배우 최초의 수상이었다. 미요시는 당시 귀화한 [[일본계 미국인]]이긴 했지만 [[기모노]]를 입고 시상식에 올라 일본인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https://youtu.be/ftg8Aqjk744?t=68|미요시 수상 장면]] 일본 영화의 걸작으로는 단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가 첫 손가락으로 꼽힌다. 본국보다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 걸작이기도 하며, 서부극, 범죄물 등 장르 영화에 끼친 혁신성으로는 가히 《[[시민 케인]]》을 형용해도 좋을 정도. 또한 세계적인 사무라이 붐을 일으킨 작품이기도 하다. 이후 《[[황야의 7인]]》을 비롯해 여러 번 리메이크와 오마주가 되었다. [[픽사]]의 《[[벅스 라이프]]》는 기본 얼개를 이 작품에서 오마주했다. 그 외에 1962년작 《[[하라키리(영화)|하라키리]]》 역시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으며 일본문화를 알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 밖에도 [[고바야시 마사키]], [[오즈 야스지로]](1903-1963)나 [[미조구치 겐지]](1898~1956)같은 흑백 예술영화 거장들을 비롯한 예술 영화로도 알아주던 시절이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